"한국서 우리를 '노예'라고…"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분노

"우리의 노동을 그런 식으로 폄훼하지 말라."

김현철 연세대 의대 교수(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부 교수)가 홍콩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필리핀 노동자에게 "한국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현대판 노예제'라고 부르는 시각이 있다"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김 교수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실제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자녀를 키우는 데 도움을 받은 '유경험자'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다 먹여살리고 있는 사람들을 그런식으로 바라본다는 점에 대해 이들이 굉장히 분노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21일 인구와인재연구원 개원 콘퍼런스에서 '외국인 돌봄 노동자 어떻게 받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이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최근 한국에도 들어오고 있는 필리핀 가사도우미 사업과 관련해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이 나온 것과 관련해 당사자의 입장도 중요하다고 언급하면서다.

김 교수는 이날 홍콩의 가사도우미 도입 사례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홍콩은 1973년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가사도우미 수가 급증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김 교수는 "대졸 여성에 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연봉이 30~40% 수준까지 낮아진 후에야 제도가 활성화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은 필리핀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데, 임금은 월 238만원(10시간 근무 기준)이다. 여성의 중위소득(271만원)의 88%, 30대 여성 중위소득(320만원)의 74%에 해당한다. 김 교수는 "가사도우미 임금이 월 100만~120만원 수준이 돼야 중산층 가정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김 교수는 "외국인을 차별할 수 없는 만큼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해 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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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부터)와 이재원 한은 경제연구원장, 김현철 연세대 교수(인구와인재연구원장), 윤동섭 연세대 총장이 한은 경제연구원과 인구와인재연구원 간 업무협약(MOU) 체결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은 제공.

필리핀 등 가사도우미를 보내는 송출국 정부에서는 이와 관련해 상충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송출국 정부는 자국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을 줘야한다고 강조하지만 적정 임금은 100만원 선이라고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필리핀에서 일할 경우 받는 평균적인 임금은 20만원 수준으로 5배 가량 많은 돈을 주면 된다는 의미다. 또 김 교수는 "상대국 정부는 임금이 좀 낮더라도 더 많은 인원을 보내기를 원한다"며 "250만원을 받는 400명 보다는 100만원을 받는 1000명이 빈곤에서 탈출하는 게 낫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주 도우미의 숙소 사용료를 부과하는 방식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현재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별도의 숙소를 이용하면서 약 50만원을 비용으로 낸다. 이를 입주도우미로 전환하면서 방 사용료를 고용주에게 내도록 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가사도우미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별도 비자를 만들어 체류 가능 기간을 대폭 늘릴 것을 제안했다. 현재 E-9 비자는 최장 4년10개월까지 체류가 가능한데, 가사도우미 비자를 만들어 고용상태가 유지되는한 체류기간에 제한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모델로, 일본은 5년 이상 근속할 경우 영주권 신청 자격을 준다. 일본어 시험과, 일본어로 치르는 개호복지사 자격을 취득하면 비자가 장기 체류 자격으로 변경된다.

가사도우미 인권보호 문제에 대해선 입국 시 교육을 강화하고, 가사도우미 간 자조 모임을 활성화해 모니터링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봤다.

김 교수는 발표 후 기자와 만나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것은 안다"면서도 "그게 안된다고 하면 대안은 무엇인지 반대하는 쪽에서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